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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글들

호날두,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기까지

by Bestmind 2008.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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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킥의 지존, 드리블의 마술사, 세계 최고의 개인기를 가진 선수,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등등..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앞에 붙는 수식어는 여러가지이다. 축구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의 몸짓하나하나, 드리블 하나하나에 열광하며 같이 흥분한다. 그가 골을 넣으면 같이 기뻐하고, 그가 실수를 했을때는 같이 안타까워한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플레이를 막는 수비는 그의 드리블에 속아넘어가고 골키퍼는 휘어져 들어오는 그의 무회전 프리킥을 막지못한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같이 플레이를 하는 같은 팀 동료들은 그와 함께 축구를 한다는 사실은 매우 행복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신인상과 올해의선수상을 탔고, 득점왕까지 차지해봤으며, 2008년 올해1985년생 우리나이 이제 23살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올해의 선수상인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23살에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었다.


맨유에는 유소년시절부터 15년 이상을 맨유에서 보낸 선수들이 많다. 이들 대부분은 레전드라 불리우며 맨유팬들이나 전세계 축구팬들한테 대접을 받고 있다. 라이언 긱스나 폴스콜스 같은 선수가 예이다. 하지만 호날두는 맨유에 입단한지 5년만에 이미 레전드급 선수로 불려지고 있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트에서만 100골이 넘는 많은 골을 기록하였고 지난시즌에만 각종 대회를 통틀어 50골을 넘게 넣으면서 프리미어리그 각종 상을 휩씁었다. 입단한지 5년만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선수로 성장한 것이다.

1985년생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도스 산토스 에베이로는 포르투갈에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누나만 3명이 있는 막내로 태어났다. 호날두의 집안은 어려운 형편으로 가족모두가 일을 하고 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호날두는 축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6살때부터 또래친구들과, 차들이 지나다니는 작은 골목길에서 축구를 했다. 그 작은 골목길에서 꼬맹이 호날두는 자기만의 기술을 익혀나갔다. 저녁 노을이 질때까지 호날두는 축구를 했으며, 1분이라도 축구공과 떨어져 있지 않았다. 축구를 좋아했고 사랑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축구에 대한 남다른 재능도 가지고 있었다. 그랬던 그는 작은 골목길 축구에 만족하지 않고 동네 축구 클럽에 들어가 축구를 하게 된다.

어린나이였지만 수년동안 그 축구클럽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동네클럽에서 벗어나 지역 유명 축구클럽으로 가게 되었다. 그팀은 라시오날이라는 축구팀이었으며 호날두의 나이 10살때 이적을 하게되었다. 호날두 이적당시 라시오날이 동네축구클럽에게 지불한 이적료는 축구 유니폼 하나와 축구공 하나가 전부였다. 라시오날로 팀을 옮긴 호날두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들과 경기를 하면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자신감이 넘치는 플레이를 하게 된다. 호날두가 주전선수가 된 라시오날은 많은 우승을 차지하게 되고 호날두는 라시오날의 간판선수로 성장한다.

라시오날의 간판선수였던 호날두는 스포르팅 리스본이라는 유명 포르투갈 프로팀에 입단하게 된다. 라시오날이 스포르팅 리스본에 2만유로 가량 빚을 지고 있었는데, 돈을 지불하는 대신 호날두는 입단시킨 것이다. 그의 나이 12살때였다. 유명 프로팀이 12살짜리 꼬마를 2만유로라는 돈 대신 택한것은 파격적인 일이었다. 스포르팅 리스본은 그의 재능을 정확히 알지는 못했기에 입단테스트를 거친후 데려오게 된다. 입단테스트에서 스포르팅 리스본 관계자는 매우 놀랐다고 한다. 전에 이런선수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스포르팅 리스본에 입단하면서 호날두는 가족들과 이별을 하게 되는데 호날두는 슬픔을 참고 훈련에만 매진했다. 새벽까지 체육관에 남아 체력훈련을 하고 숙소에서까지 연습을 했다. 그렇게 유소년팀에서 시절을 보낸후 15살이 되던 해 본격적으로 스포르팅 소속으로 프로경기에서 뛰게 되었다. 스포르팅 소속으로 호날두는 뛰어난 개인기를 앞세워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챔피언스리그에도 나가고 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모습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인 퍼거슨도 지켜보고 있었고 운명같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친선경기를 통해 퍼거슨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스포르팅 리스본과 맨유는 친선경기를 가졌는데 그 친선경기가 있기 하루 전 이미 퍼거슨은 1년후 스포르팅에서 호날두를 맨유로 데려가기로 계약을 했는데 호날두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당장에 데려가기로 다시 계약을 했다고 한다. 2003년, 그렇게 18살이었던 호날두는 세계최고의 명문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맨유 입단 후 호날두는 뛰어난 기량을 잉글랜드 팬들 앞에서도 보여줬다. 빠른 몸놀림으로 상대를 뚫는 모습에 맨유팬들은 열광했다. 2004년 호날두는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에도 발탁이 되어 유로2004 본선무대를 밟게 된다. 유로2004 예선에서 많은 골을 기록하고 본선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다. 유로2004는 포르투갈에서 열렸기 때문에 호날두와 홈 팬들을 등에 업은 포르투갈은 결승전에 진출하였는데, 결승전에서 그리스에게 패하게 된다. 호날두는 결승전에서 패한 이날 눈물을 보였다.
그 후로 계속 포르투갈 대표팀으로 활약하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도 나가게 되는데 월드컵 본선에서는 그리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하나의 사건을 만들었다.
2006독일월드컵 8강전 당시 포르투갈과 잉글랜드의 경기 때 웨인루니가 퇴장당하였는데 퇴장당한 이유가 호날두 때문이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호날두는 당시 우물쭈물하던 심판에게 강하게 어필했고 그 어필로 인해 웨인 루니가 퇴장당한 것이었다. 
포르투갈은 결국 잉글랜드를 이기고 독일월드컵 4강진출이라는 성적을 남겼다.
월드컵사건이후 호날두는 잉글랜드 팬들을 무서워했는데, 어느날 호날두에게 쏟아졌던 야유와 욕설들은 모두 찬사로 바뀌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맨유에서 그가 엄청난 활약을 했기 때문이다.


호날두는 주급만 2억을 넘게 받는 스타선수로 성장했다. 스타선수로 성장한 만큼 CF출연도 많이 하였는데 전세계에서 그가 출연한 CF만도 수십편이 넘는다. 데이비드 베컴과 견줄정도로 많은 CF에 출연하였다. 조만간 아마 CF쪽에서는 베컴을 넘어서지 않을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2008년 발롱도르를 수상하였다. 발롱도르는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한테만 주어지는 올해의 선수상인데 23살의 나이에 발롱도르를 수상한 것이다. 호날두는 이미 세계 최고의 선수이다. 맨유의 공격은 항상 그를 거치며, 그는 맨유 공격의 상징이 된지 오래다. 프리미어리그 수비수들은 호날두를 두려워하고 상대팀의 감독들마저 호날두를 치켜 세운다. 호날두는 세계최고의 축구팀에서 뛰고 있지만 그에게는 늘 러브콜이 잇따른다. 라리가 최고의 명문인 레알 마드리드는 그를 영입하기 위해 수백억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실패하였다. 영입에는 실패했지만 포기는 하지 않고 있다. 

호날두의 맨유 등번호는 7번이다. 맨유에서 등번호 7번은 브라이언 롭슨, 에릭 칸토나, 데이비드 베컴과 같은 맨유의 레전드선수들만이 달았던 상징적인 번호이다. 퍼거슨 맨유 감독은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그를 영입하자 마자 등번호 7번을 달아 주었는데 퍼거슨 감독은 차세대 베컴으로 호날두를 점찍었다고 한다. 

맨유 입단 6년이 되어가는 지금 호날두는 이미 베컴의 모든면을 앞지르고 있다. 맨유의 전설이 되는 날이 멀지 않았다.
아니 이미 맨유의 전설일지 모른다.


    참고다큐
<xtm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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